연극 <획의 간극> 시연 공연

만드는 사람들
작/ 연출 : 임주영(이반림)
조명감독 : 이주희
조명 오퍼레이터 : 장하영
사운드, 그래픽 디자인 : 장하영
음악 감독 : 김아란
조연출 : 김진영
제작부 : 구효은
출연 : 이한울

Text

기획의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를 경제적 생산성으로만 평가하는 시스템은 개인을 소외시키고 심리적 고립을 초래한다. '획의 간극'은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퇴출'된 한 개인의 내적 여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소멸을 탐구하는 극이다.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죽음 이후 영혼이 에너지원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조명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사회적 가치체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안한다. 미니멀한 무대 설정과 배우의 강렬한 1인극 연기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적 공간인 '원룸'을 통해 현대인의 고립된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공연은 관객들에게 예술적 감동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놉시스

'획'은 자신의 원룸을 관객에게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집안에서 발견한 유서를 통해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획은 에너지원으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실직, 재취업 실패, 관계 단절, 그리고 친구 '선'의 죽음 등 다양한 기억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해 나간다. 2막에서는 획이 성공적인 마케터로서 이상적인 삶을 상상하지만, 곧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펜조차 잡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그는 마지막으로 원룸의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집을 소개하고 자신의 소멸을 받아들인다. "이젠 새집의 냄새가 나요"라는 대사와 함께 획이 사라지고 막이 내린다.

*

핵 개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사회적 연결망이 해체되고, 공동체는 더 이상 필수적인 생존 기반이 되지 못한 채 각자의 생존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그 결과 청년 고독사는 특수하거나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예견 가능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 1인극 형태의 작품 「획의 간극」을 집필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한 글자, 두 글자씩 조심스럽게 적어나갔다. 그러나 그 행위는 단순한 창작을 넘어, 나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되었다. 사회로부터 점차 이격된 개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관계의 부재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다.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는 반복적으로 좌절되었고, 이는 곧 외로움이라는 감정적 층위를 넘어선, 존재론적 고립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작품 속 청년은 지속적으로 타자와의 소통을 시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깊은 고독을 체험한다. 이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소통을 시도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단절의 감각이다. 그는 스스로를 표현할 언어를 찾지만, 그 언어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의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간극을 남긴다. 이 간극이 점점 벌어질수록, 청년은 자신이 발 딛고 선 사회적 지반이 얼마나 허약한지 깨닫게 된다.

결국, 고립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고립'은 인간 관계의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조건이 개인의 고립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획의 간극」은 이 고립을 극복하거나 극적인 해소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고립을 직면하고, 그 안에 남겨진 인간성의 조각들을 세심하게 포착하려 한다.

특히 나는 이 작업을 통해, 언어의 한계와 침묵의 영역을 탐구하고자 했다. 단어들이 하나둘 이어질 때마다,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명확해졌다. 「획의 간극」은 이렇듯 '획'—즉 언어의 최소 단위—들이 만들어내는 연결과 단절의 리듬을 따라가며, 인간 존재의 균열을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물리적 공간마저 모호해진다. 청년은 명확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없는 불확정성 속을 떠돈다. 이 공간적 비가시성은 곧 그의 사회적 위치와 심리적 상태를 은유한다.

「획의 간극」은 결국, 청년 고독사를 단순히 하나의 사회문제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감정적, 존재론적 풍경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고립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이 세계의 가장 리얼한 단면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묻고자 한다. 우리는 과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있는가.

획의 간극